100만원 소액대출 :: 내가 문예창작으로 재수한 이유(공부팁 아님)

저는 인생의 목표가 좋은 대학이었던 학생이었어요.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정외과가 아니면 저라는 인간의 가치가 다 사라질 것 같았죠. 말 그대로 공부와 스펙 쌓기만 하며 초중고를 보냈습니다. 제가 똑똑하고 성실한 아이라는 부모님의 믿음과 자부심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 정규동아리 하나 부장, 자율동아리 하나 부장, 팀플 조장을 동시에 맡아서 진행시키며 성적도 전교권을 유지했습니다. 이건 결코 자랑이 아니에요ㅠㅠ 저는 이렇게 산 걸 오히려 후회하는 편이거든요. 그때 전 많이 아팠으니까요. 툭하면 위염에 위경련에, 생리통도 너무 심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신체적으로만 아팠어요. 제 인생이 흔들린 건  3학년 때였고요.

 

3학년 때 갑자기 교실에서 쓰러졌습니다. 공황장애였어요. 우울증은 전부터 기본 옵션처럼 앓고 있었는데 공황장애 발발과 함께 정말 심해졌죠. 저는 죽지 않을 자신이 없었고 결국 자의로 정신과에 입원하게 되었어요. 그곳에서는 글만 쓰고 책만 읽었어요. 새벽에 이불 속에 숨어서 쓰지 않으니까 살 것 같더라고요. 입원 기간 동안이 그때까지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어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어서요.

 

하지만 퇴원한 후 저는 다시 공부를 했어요.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도 못해서 독서실도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공부했어요. 성적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상위권이었고, 출결도 엉망이 됐지만 자소서로 커버칠 수 있다고 믿었어요. 학종으로 지금까지 목표했던 대학들을 다 넣었죠. 결론은 1지망 2지망 모두 떨어졌습니다. 근데 절망스럽지가 않더라고요. 선생님들은 아프지만 않았으면 붙었을 거라고, 올해 최저는 맞췄으니 다시 한 번 해보자고, 또는 수능성적도 좋으니 정시로 가라고 격려해주셨지만 하나도 와 닿지 않았어요. 저는 제가 수능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며 했던 생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이제 실컷 글을 쓸 수 있겠구나.'

 

많은 고민과 부모님과의 대화를 거쳤고, 결국 저는 문창과 재수를 결정하게 됩니다. 거의 도박 같았어요. 몇 년씩 준비한 분들도 떨어진다는 문창과 실기를 스무 살에 처음 도전한다니. 게다가 야매로만 계속 써왔지, 전문가에게 내 글을 보이는 것도 처음인데. 많은 걱정과 불안과 후회, 자괴감 속에서 학원에 등록했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행복했어요. 진짜 너무. 스무 살이어서 특기자 자격이 주어지는 백일장에도 거의 다 나가지 못하고, 늦었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지만 글에 더 빠져들다보니 다 잊히더라고요. 숨지 않고 눈치 보지 않으며 쓰고, 읽고 하다보니 병은 나아갔어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도 공황 증세가 나타나지 않게 됐고 죽음에 대한 생각도 아예 하지 않게 됐어요. 입시 글에만 갇히지 않고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며 다양한 소설들을 써나갔어요. 제가 재능이 나름 있다는 걸 인정받고 실력도 쌓이니 더 재밌어졌습니다.

 

저는 일 년간 나간 세 개의 백일장(제가 생일이 늦어서, 만18세 이하는 받아주는 백일장 소수만 나갈 수 있었어요.) 중 하나에서 상을 탔고, 동국대 문창과 입상자 전형(일반 실기전형과 시제는 같고, 입상자끼리 겨루는 전형이에요. 경쟁률은 당연히 훨씬 낮아요.)을 비롯해 문창과 실기로 대학들에 지원했어요. 그리고 동국대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ㅠㅠ


사실 제 1지망은 한예종 서창전공이라 아직 입시가 끝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혹시 저와 비슷한 분들이 힘들어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용기를 내지 못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합격수기를 올려봅니다. 물론 공부를 하지 말자는 건 절대 아니에요!!ㅋㅋㅋㅋ 공부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나쁘게 보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ㅠㅠ 저는 다만 과거의 저처럼 휘둘리지 말고 진짜 꿈을 찾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주변의 기대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요.

 

지금 저는 선물 같았던 일 년을 마무리 지으며, 제 꿈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약물치료는 하고 있지만 유지치료로 줄여나가고 있고, 소설 등단을 위해 글을 쓰고 있어요. 입시 동안 읽고 싶었던 인문학책들도 찬찬히 읽고 있고요. 아직 저는 젊고, 하나도 늦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기 위해 계속 글을 쓰고 있답니당